기행 수필/사서 하는 고생 /鞍山 백원기
토요일엔 항상 붐비고 교통체증이 있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아침 일찍 서둘지 못하고 느슨하게 움직이는 나 자신이 게으르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슨 시험을 보러 가는 것처럼 부지런히 긴장감을 가지고 행동했는데 역시 세월이 무섭긴 하다. 6/18일 강변역에서 1-1 의정부행 버스를 탄 시간이 아침 10시니까 한 시간 후에나 의정부에 도착하겠다. 40분 만에 퇴계원에 도착했는데 공사 현장을 바라볼 때마다 확장되는 퇴계원의 변모를 볼 수 있다.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선산이 있던 곳이라 그때 그곳에 사시던 여러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퇴계원을 지나 20여 분 만에 의정부 만가대에 내려 민락동 청구아파트 가는 버스를 타려고 내렸더니 두 정거장 거리였는데 차라리 만가대에서 걸어가도 될뻔한 거리였다. 물이 말라 약수터 기능이 사라진 곳을 지나 도로 연결을 위한 터널 공사가 한창인 고개를 들머리로 해발 210.6m의 부용산에 오르는 중이다.
오래전에 오른 충북 음성의 부용산(해발644m)과 중앙선 신원역이나 양수역에서 오르는 부용산(해발366m) 그리고 오늘 의정부 부용산을 걷는 것이다. 낮은 산줄기를 탄지도 몇 년 된 것 같은데 등산가 엄홍길씨의 말대로 작은 산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 깊이 각인된다. 10분쯤 올랐을 때 할머니 한 분과 아주 어린 손녀가 산길에서 까만 열매를 줍고 있었는데 오디였다. 우리도 나무에 달려있는 까만 오디를 따서 입에 물었더니 달콤한 맛이 입속을 맴돌았다. 정상까지는 계속 가파르고 밧줄도 계속 매여 있어 안전에 유의하려는 산길 이였다. 북한산처럼 왕모래가 있어 미끄러지면 치명타를 입을 수 있으므로 항상 조심스럽고 성의있게 임해야 하겠다. 나무숲은 우거져 햇볕을 가리는데 정상에는 넓은 공터이며 정상석은 없고 산불감시초소가 우뚝 서 있었다. 어떤 주민 내외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우리는 동쪽 능선을 따라 20분 거리에 있는 범바위라는 검은 바윗돌에 앉아 간이 돗자리를 펴고 쉬면서 차와 과일과 약간의 빵을 먹으며 30분간 머무는 동안 디카로 사진을 찍었다. 서로를 찍었는데 비교적 잘 나온 것 같다. 청설모 한 마리가 날쌔게 나무를 탄다.
아파트 주변 산이라 심심치 않게 사람들이 보인다. 토요일이라 젊은 사람들도 자주 보인다. 기껏해야 두 시간짜리 산행이라 대부분 편한 복장이다. 정상에서 만났던 부부의 조언대로 범바위를 출발해서 40여 분 만에 능선 끝까지 왔는데 너무 절망이다. 능선 꼬리에는 집도 없고 길도 없으며 도시계획에 따라 넓은 단지가 조성되고 있었으며 공사장 사람들과 장비만 웅웅거리고 있었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나가려면 섭씨 30도가 넘는 한낮에 나무 그늘도 없이 평탄치도 않은 벌판을 걷자면 대단히 힘이 들고 지칠 것이라고 예상됐다. 2005년 여름 죽산에서 택시를 타고 영창대군 능에 들렸다가 마옥산(해발445m)에 올라 하산하여 이천행 버스 길까지 넓은 밭길을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오랜 시간 걸어본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걸음을 되돌려서 아까 출발했던 범바위 쪽으로 가다가 하산로가 발견되면 탈출하기로 하고 오던 길로 되돌아 가던 중 집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빨간 리본을 발견하고 사람이 다닌 흔적이 보인다 하기에 자세히 보니 산꾼이 매단 리본이였고 나뭇잎이 납작한 산길은 밟고 다닌 흔적이라 재촉하여 내려섰더니 금방 길이 나오고 승용차들이 보였으며 배밭이 보이고 뜨문뜨문 음식점과 주택이 보였다.
산길을 밟을 때마다 들머리(산행시작점)와 날머리(하산완료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모르면 헤매게 마련이다. 우리가 내려온 마을은 갓바위부락 입구였다. 보아하니 동쪽으로 검푸른 산줄기가 보였는데 작년에 별내면 청학동 주공아파트단지에서 올랐던 도정산과 비루개봉 줄기라고 짐작 되었으며 그 도정산 밑이 자연부락으로 형성된 갓바위 부락인가 싶다. 한참 만에 1-5 버스가 왔다. 배차간격이 30-80분이라니 기다리기 싫으면 콜택시를 불러야 한다. 서너 정류장을 지나 의정부교도소 앞에 내려 건너편 서울행 정류장에서 1-1 강변역행 버스를 탔다. 이제 오늘 계획은 실천함으로 끝이 났다. 일주일 동안 이번 트레킹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를 했어도 착오는 또 있었다.
왜 번번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집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만 이게 남는 장사 같고 보람있는 것 같아 산길을 뒤지며 지나 온지 어언 25년이 된다. 배는 고프지만 먹을데가 마땅치 않아 굶은 김에 아예 서울가서 먹겠다고 버스 등받이에 편히 기대고 눈을 감아본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 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전도서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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