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가 보려고 마음은 먹었지만 여의치 않아 미루다가 오늘, 서해 영종도 백운산(해발255.5m)에 올랐다. 새벽이면 영하10도를 웃도는 날씨가 한 달여 계속되더니 이제는 따뜻한 봄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고 음력 대보름 휘황한 달빛이 온누리를 비추면 새봄의 씨앗들이 푸름을 약속하는 듯 하다.
서울역사에 들어서면 몇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린나이에 진해로 떠나는 군용열차를 타던 일과 명절 때면 기차표를 사려고 아우성 치는 사람들을 기다란 작대기로 통제하던 기억, 그리고 건너편 대우빌딩 자리에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가 있었던 기억들이다. 서울역 1층에서 국제공항철도 이정표를 따라가면 지하3층에 승강장이 나온다. 우리는 우대자라 무료로 통과해 대기중인 열차에 올랐는데 일반 전철보다 넓고 깨끗하였으며 승객이 적어 한가했다. 건암역을 통과하여 운서역 까지 공사중인 아라뱃길과 나란히 주행한 시간은 40여분 이였고 길고 긴 영종대교를 건널 때는 물 빠진 갯벌이 광활하게 드러났다. 영종도에 도착했다. 예전에는 배로 가야 했는데 전철로 왔으니 감개무량하다. 삼십 년 전에 친구이자 군 선배인 b형의 매형 되는 분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영종도에 땅을 사놓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국제공항이 들어설 줄 누가 알았을까?
운서역에 도착한 시간이 12시가 다 되어 우선 길 건너편 식당에 들려 소머리 국밥을 먹었는데 육천원짜리 치고는 꽤 고기가 많은 편이였고 신도시 개발을 위한 업체 직원이 많아 꽤 분주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국제도시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게 될 이곳 영종도에는 대형 기중기가 곳곳에 서 있어 건설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식당에서 나와 동쪽을 바라보니 나지막한 산이 검푸르게 보였는데 해발 255.5m의 백운산임을 알 수 있었다. 온통 공사중이라 길도 매끈하지 못해 차를 타야 했는데 마침 버스 정류장에 나이가 많으신 아저씨가 계셔 백운산 들머리를 물었더니 그 산 밑 운서초등학교가 있는 동네에 자식이 산다 하시며 버스가 드물다 하시기에 함께 택시를 타고 운서 초등학교 앞에 내렸더니 요금이 오천원이라 한다. 아저씨와 헤어지고 집사람과 함께 식후라 아주 천천히 산길을 올랐는데 편편한 흙길에 소나무 향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소나무는 계절에 상관없이 그 향이 짙은 것 같다. 작은 산이지만 소나무가 많고 진달래와 철쭉나무도 많아서 머지않아 산개나리가 먼저 꽃망울을 터트리면 진달래, 철쭉이 줄지어 피고 화려한 꽃밭을 가꿀 것만 같다.
산길은 단순해서 50분도 되지않아 정상에 올랐는데 커다란 목제로 된 이정표에 백운산이라 쓰였으며 그 옆에 팔각정자가 있고 서쪽에는 반원형의 전망대가 있었는데 나무 의자에 앉아 차 한 잔씩 마시고 사방을 둘러 보았더니 안개만 걷힌다면 가시거리가 꽤 될것 같다. 산은 낮지만 막힘이 전혀 없어 조망이 꽤 훌륭한 산이었다. 한 무리의 산객에게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서울에서 왔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올라온 방향으로 하산하려나 보다. 여름철에 올라 전망대 의자에 앉으면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무척 시원할 것 같다. 흐르는 땀이 쑥 들어갈 것만 같다. 하산은 인천과학고등학교와 국제고등학교가 있는 코스로 내려갔는데 산행시간과 휴식시간 모두 포함하여 두시간 정도 걸리는데 만약 운서역에서 부터 걷기 시작한다면 세시간은 족히 걸릴것 같다.
운서역으로 가기위해 영종택시를 불렀더니 운서초등학교 보다 조금 가가운 거리라 운서역 까지 삼천원이 나왔다. 조금 아쉬운감이 있지만(산행시간) 바다와 육지가 어우러진 여행겸 등산 코스로는 손색이 없다 하겠다. 어느덧 태양은 서해로 기울고 바닷바람은 차가워져 운서역 개찰구에서 카드를 찍고 나가니 서울행 열차가 문을 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