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본카테고리

녹번 골짜기

by 백원기 2011. 1. 23.

모두의 삶이 암울했던 시절
우리 가족은 녹번 골짜기에
무허가 토담집을 짓고 살았다
그것도 어머니의 힘으로 이루어진 집
사방 여덟 자 방 두 칸에 부엌 하나 딸린 집
수십 수백 장의 연탄은 들이지 못하고
새끼줄 끼어 놓은 연탄 하나씩 들어다 땠다

우리 어머니는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다
아들이 전방 소위가 되어 꼬박꼬박 부쳐오는
쥐꼬리만 한 봉급이 자랑스러우셨다
한 달에 한 번 돈을 찾으실 때마다
우체국 여직원에게 자랑 하셨단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얼마 뒤
소리소문없이 군복을 벗고 낯선 사회로 나와
뾰족한 대책도 없이 막연했기에
온 집안이 불 꺼진 밤거리처럼 캄캄했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
쏟아진 물통처럼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우리 곁을 떠나신 날이 가까워질수록
철없던 내가 얄밉고 후회스럽기만 하다

'기본카테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 같은 고향  (0) 2011.01.28
기쁨의 눈물  (0) 2011.01.25
안타까운 꽃 한 송이  (0) 2011.01.21
고통의 쓴 물  (0) 2011.01.20
보리 가시  (0) 201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