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삶이 암울했던 시절 우리 가족은 녹번 골짜기에 무허가 토담집을 짓고 살았다 그것도 어머니의 힘으로 이루어진 집 사방 여덟 자 방 두 칸에 부엌 하나 딸린 집 수십 수백 장의 연탄은 들이지 못하고 새끼줄 끼어 놓은 연탄 하나씩 들어다 땠다
우리 어머니는 자랑거리가 하나 생겼다 아들이 전방 소위가 되어 꼬박꼬박 부쳐오는 쥐꼬리만 한 봉급이 자랑스러우셨다 한 달에 한 번 돈을 찾으실 때마다 우체국 여직원에게 자랑 하셨단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얼마 뒤 소리소문없이 군복을 벗고 낯선 사회로 나와 뾰족한 대책도 없이 막연했기에 온 집안이 불 꺼진 밤거리처럼 캄캄했다 내가 그때 조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 쏟아진 물통처럼 얼마나 서운하셨을까? 우리 곁을 떠나신 날이 가까워질수록 철없던 내가 얄밉고 후회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