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카테고리548 눈길을 걷던 날 눈이 왔으면 했다 그런데 눈이 왔다 밤새 뜬 눈으로 내린 눈 새벽녘,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 탐스럽게 소복이 쌓였다 아깝다는 생각 아이젠을 꺼내고 스패취 까지 챙긴다 오르는 산길엔 벌써 지나간 발자국 안개 가린 시야, 발길은 더디고 이따금 들리는 산님들의 목소리 옛적 속세를 떠나던 출가 인의 빈 마음 시기 질투 분노 증오를 씻어 낸다 고요한 나라 산속의 아침은 온통 하얀 설국 잔치가 열렸고 싸한 산 공기가 깊숙이 스며들 때쯤 정상 봉수대에 올랐다 암흑 같은 찌뿌듯한 날씨 나 홀로 봉수대 곁에 섰다 뿌연 안갯속 앙상한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내 주위를 맴돌며 하얗게 웃는다 포근하게 내린 기다리던 눈 짧은 만남의 데이트 어느덧 하산 시간은 다가오고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 내년에 또 만나자는 손 흔들며 멀어져 .. 2010. 12. 30. 흔들리는 창문 겨울 이맘때면 찾아오는 소리 작은 방 유리창 문을 흔들며 열어 달라고 졸라댄다 캄캄한 새벽 가만히 흔들다가 어떤 때는 크게 흔들어 덜렁거리는 소리 내 마음의 깊은 잠을 깨우고 뇌리에 깊숙이 잠들고 있는 지나간 꿈들을 깨워 하나씩 튀어나와 마중 나오길 바란다창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 막으려 엊저녁에 붙인 문풍지 사이로 그래도 새어드는 찬 바람 소리숨죽인 적막의 성벽을 타고 넘어 내 몸을 움츠리게 할 때면 몸과 마음은 깨어 일어나 임들이 정성껏 심어 놓은 까만 글자 하나식 뽑아들고 눈 끝으로 매만지고 있는 동안 오던 곳으로 되돌아갔나 싶던 찬바람이 아직도 추위에 떨며 발 동동거리고 문밖에 서 있었다 2010. 12. 27. 쓸쓸한 둥지 윤기 없는 날개 퍼덕이며 어미 새는 느릿하게 들락거린다 오랜 세월에 퇴색된 깃털마저 하나씩 바람에 날려가고 허술한 모양새가 측은하다 한때는 새끼 새를 데리고 높이 올라 날개 치며 훈련하던 어미새 먹이를 물어다 새끼 입에 물려주고 지푸라기, 잔 나뭇가지 물어다 따뜻하게 짓던 보금자리 둥지 바람이 불거나 비 오는 날이면 죽지로 감싸고 다람쥐, 청설모 덤벼들까 노심초사하던 어미 새 지금은 다 떠나고 홀로 남아 쓸쓸한 둥지를 온종일 지키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새끼 새가 그리워 어미 새는 빈 둥지만 쪼며 시름에 잠긴다 2010. 12. 26. 한 해 한 번이라도 헤어지기 싫은 발걸음을 억지로 떼었다 한낮이 지나면 어둔 밤이 오듯이 까닭도 알 수 없이 멀어져 가던 너와 나 안타까운 마음 어찌할 수 없었다 속 시원히 듣기나 하였으면 좋으련만 다문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바라본 네 눈에 비치는 슬픔이 완연했다 세월이 더 간 후에나 만나자던 너 여자의 마음이 더 강한 것을 그때 알았다 약하고 여린 것 같아도 단호함이 증명 됐던 날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아니 한 해 한 번이라도 오작교에서 만나자고 나는 말하였지 함께 만나던 찻집, 함께 앉았던 맛집이 아직도 매달린 간판 아래 문 열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지만 너와 나의 오랜 흔적은 찾을 길이 없구나! 봄 여름 가을이 어느새 다 지나가고 동짓달 마지막 날들이 하얀 눈을 맞으며 찬바람을 마중 나가 완연한 겨울.. 2010. 12. 24. 이전 1 ··· 93 94 95 96 97 98 99 ··· 13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