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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카테고리

눈길을 걷던 날

by 백원기 2010. 12. 30.
눈이 왔으면 했다
그런데 눈이 왔다
밤새 뜬 눈으로 내린 눈
새벽녘, 희미한 가로등 불빛아래
탐스럽게 소복이 쌓였다

아깝다는 생각
아이젠을 꺼내고 스패취 까지 챙긴다

오르는 산길엔 벌써 지나간 발자국
안개 가린 시야, 발길은 더디고
이따금 들리는 산님들의 목소리
옛적 속세를 떠나던 출가 인의 빈 마음
시기 질투 분노 증오를 씻어 낸다

고요한 나라 산속의 아침은
온통 하얀 설국 잔치가 열렸고
싸한 산 공기가 깊숙이 스며들 때쯤
정상 봉수대에 올랐다
암흑 같은 찌뿌듯한 날씨
나 홀로 봉수대 곁에 섰다

뿌연 안갯속
앙상한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내 주위를 맴돌며 하얗게 웃는다
포근하게 내린 기다리던 눈
짧은 만남의 데이트
어느덧 하산 시간은 다가오고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
내년에 또 만나자는 손 흔들며 멀어져 간다

*봉수대(봉화를 올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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