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이 오면 피 끓는 청춘으로 돌아간다.4월이면 나의 젊은날 기념일이 여럿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획된 청운의 뜻을 품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한 희망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흘러가야하는 나의 빈약한 삶 속에서 딛고 갈 수밖에 없었던 안타깝고 쓰라린 기념일이며 잊힌 시절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도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4월 5일은 나의 결혼기념일이다. 북한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68.1.21 다음 달인 2월에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던 p학교 11기로 입교하여 6개월에 걸친 교육을 받고 대기 중(기동타격임무)이였는데 그다음 해인 4월5일에 영등포 영동교회에서 가난하고 피곤하며 쓸쓸한 결혼식을 담임목사님 주례로 식을 올린 날이다. 시절이 시절인만큼 초조와 불안의 도가니 속에서 치러진 것이다. 4월7일은 한 달 모자라는 만18세의 나이로 남쪽으로 달리는 군용열차를 타고 진해 해병 교육단에 입대한 날이다. 철없는 나이에 16주간의 고된 훈련을 끝내고 이등병조(지금의 하사)의 계급장을 달았지만 참 힘든 군생활이었다. 싸늘한 진해 앞바다와 王자로된 대형식당 그리고 천자봉 구보와 마진고개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4월22일은 서울 후암동 해병대 사령부 인사국에서 근무중 호형호제하던 동기생 d형의 간곡한 요청에 이끌려 일과 후에 다니던 oo대학을 그만두고 육군으로 전군, ocs(간부후보)#155기로 입교하여 28주간의 힘든 훈련 후 광주광역시 상무대 보병학교에서 5.16나던 해 4월22일, 수료와 동시 소위로 임관했던 날이다. 지금도 4월이 오면 일 년 내내 옷장 맨 위 먼지 앉는 곳에 올려놓은 빛바랜 낡은 결혼기념 앨범과 해병하사관학교 수료기념사진, 육군 보병학교 임관 기념 사진을 꺼내보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한 터에 뿌리를 깊게 내려 무성한 잎에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은 동기를 보면 인간적으로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하여 무엇 하나 올바르게 자라나지 못한 나무를 바라보는 것처럼 마음의 눈물을 글썽이는 것 이다. 햇빛 받아 수분을 머금고 쑥쑥 자라나는 나무처럼 내 인생도 자라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십대 청춘 나무가 싱그러운 이파리를 드리우며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을 가리고 겨울에는 차가운 북풍을 막는 나무로 자라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잠히 눈을 감고 차츰 깊은 상념에 빠져들며 잊을 수 없는 4월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