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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巨木 이천 십 년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여름을 잊으려 자꾸만 기다려지던 가을 어서 가을이 왔으면 간절한 마음이었다 기도는 기다림이라 했다 차오르는 보름달과 넉넉한 정 파란 하늘에 오락가락 뜬구름이 흐른다 산중에 나무는 살기 위해 곧게 서야 했고 좋은 집터라고 뻐기며 기뻐했지만 태풍 "곤파스"에 눈물잔치를 벌이고 말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찾아간 험할 줄도 모르는 아담한 산 깜짝 놀랐다 덩치 큰 거목이 송두리째 뽑혀 집 덩이만 한 뿌리가 하늘을 바라보고 벌러덩 누웠다 갈 길을 막는 쓰러진 거목들 타고 넘고 기어가다 우회한다 한 참 자라나는 작은 나무들은 태풍에 잔가지 회초리를 수없이 얻어맞아 바르르 떨다가 이파리를 토하고 기절했다 자기 생존을 위한 처절한 현장 견딜 수 없었던 나무뿌리와 떨어져 나간 이파리들이 벌.. 2010. 9. 20.
가을에 꺼내는 사랑 삶을 지탱시켜주던 정신을 오랫동안 여름에 빼앗겼다가 이제야 되돌려받아 맞이했다 괜한 고생에 억울한 생각 다시는 빼앗기지 않으리라 그와의 싸움은 끝이 나고 잊었던 사랑을 다시 꺼낸다 알알이 맺힌 청포도 사랑 한 바구니 가득 채우고 손으로 마음으로 쓰다듬는다 밤바람 문틈 차가울 때면 베개를 높여 뜨거운 가슴 식히느라 이리저리 몸을 뒤척인다 별도 없는 캄캄한 밤에 내일 아침이면 떠오를 해 기다리다 억지 잠이 들면 너를 볼 수 있는 기쁨에 젖고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는 포근함에 깊이 잠들고 있으련다 2010. 9. 17.
가을 볕에서 초가을 볕은 가을뿌림을 재촉한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볕은 그동안 배어있던 눅눅함과 후덥지근한 공기를 씻어 낸다 잠깐이지만 어리둥절한 것은 엄동설한에 따뜻한 볕이 들던 한적한 툇마루의 그리움이었다 오늘 그 시간은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동거처럼 포근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모습이 오늘 아침만 같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버려야 할 것은 아낌없이 버리고 좋은 것만 남겨 이 가을에 들어설 햇볕처럼 쪼이고 싶고 아끼고 싶다 2010. 9. 16.
사랑은 시로 남아 모닥불보다 더 뜨겁게 타던 사랑 한줄기 소나기에 붉은 열기 사위고 검은 숯 한 덩이로 남았구나 봄이면 진달래꽃 따라 불붙듯 물들어가던 사랑 여름이면 물빛 맑은 개울가에 발 담그며 머리 감고 가을이면 낙엽 따라 안쓰럽던 사랑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면 무서리에 움츠러들었다 겨울이면 두툼한 외투에 쌓이던 눈 서로가 곱게 털어주려 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인 양 서운하게 사라져 사랑하기에 떠나야 한다고 영원한 시 한 편 가슴에 남겨 논 채 홀연히 길 떠났구나 2010.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