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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의 얼굴 손자의 얼굴/鞍山 백원기 부슬부슬 봄비는 내리는데 마을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들어선다 문이 열리자 환하게 웃는 손자의 얼굴 초등, 이 학년 귀여운 얼굴에서 옛날 자식의 얼굴이 보인다 학교 가랴 태권도장 가랴 공부방 가랴 땀과 피곤의 하루가 가지만 그저 좋아 빵끗 웃는 얼굴 나는 우산을 펴 고사리 손을 잡고 나란히 웃으며 즐겁게 걷는다 그 옛날 고 삼이던 자식이 어둔 밤, 지친 몸으로 귀가하며 웃어 보이던 함박 웃음이 손자 녀석처럼 환하게 보였지만 웃음 한구석에 그늘진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자식이 지나갔던 그 길을 손자도 가야 한다 생각하니 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2011. 5. 22.
딴 콩 부부 딴 콩 부부/鞍山 백원기 줄곧 한 줄기에 붙어 살아왔지만 서로가 달라 항상 어긋나는 삶 한 사람은 산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 사람은 강과 바닷가를 좋아한다 한 사람은 왁자지껄 먹지만 한 사람은 홀로 외롭게 먹는다 한 사람은 된밥이 좋다 하지만 한 사람은 진밥이 좋다 한다 한 사람은 여름에도 이불을 덮지만 한 사람은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는다 한 사람은 글 읽기를 좋아하지만 한 사람은 노래 부르길 좋아한다 한 사람은 눈길 걷기가 좋다지만 한 사람은 빗길 걷기를 좋아한다 한 사람은 어디를 같이 가자 하지만 한 사람은 혼자 가라 한다 하나의 줄기에 붙어사는 콩 검은 콩 하얀 콩으로 자라나더니 어느새 딴 콩 부부가 되었네 2011. 5. 19.
빈 문자판 빈 문자판/鞍山 백원기 소식을 기다리는 허전한 마음 기다리고 기다려도 고요한 화면 내 빈 마음에 네 기억 지우지 못함은 첫사랑의 눈물을 닦지 않으려는 의지 눈물방울 받아 영롱한 보석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은 가련함이니 내 빈 문자판에 숫자를 찍어다오 홍시처럼 붉은 가슴에 날아드는 숫자 드려다 볼 때마다 쓸쓸한 사각 안에 미소를 그려주고 꿈을 채워주렴 길게 써 내려간 그리움의 사연 내 가슴 갈피마다 하나씩 넘겨다오 2011. 5. 17.
너 거기 있기에 너 거기 있기에/鞍山 백원기 떠남은 낯선 것들과의 만남 만났던 인연처럼 반갑기만 하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탄다 토요일엔 붐빌 줄 알면서도 좀 비싼듯한 요금 망설이다 먼 산 가려고 버스를 탄다 너는 나를 한시도 잊지 않는다 나를 품어 주는 너 거기 있어 힘들면 돌아서고 싶었지만 외딴곳 너 있기에 달려간다 거긴, 낯선 얼굴의 산이 있고 낯선 나무와 꽃과 바위가 나를 반기면 나도 반가워 약속 없는 만남, 길을 떠난다 2011.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