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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 구 름 오늘 밤에 먹구름이 마실 온단다 회색빛으로 덮어가는 가을 하늘 웃음소리 하나 없는 냉랭한 데서 서로 주고받는 말은 전쟁과 평화의 근심 어린 이야기 촛불을 켜놓고 밤을 지샌다 문밖엔 공기를 찢는 총알 소리 날카로운데 부모님은 자식들을 아랫목에 재우시며 낙심에 찬 말씀을 하셨지 여섯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가야 하나 큰 걱정하시던 그 말씀을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나는 들었지 도무지 들리지도 않는 귀머거리들이 흉한 꼬리를 언제나 내리려는지 벌써 구세군 자선냄비 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비는 밤을 지나 멈추고 하얀 눈송이 하나씩 날리려는데 못다 한 김장 걱정 할 일도 많아 이 걱정 저 근심이 가슴에 쌓여도 새벽이면 먹구름 고이 떠나 보내고 숲 향기 곱게 마셔 볼 수 있었으면 2010. 12. 3.
그리운 그 시절 지금처럼 찬바람이 몰아치면 따뜻했던 네 생각이 시루떡 김 오르는 것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마주 앉았으면 너의 커다란 눈동자로 그윽하게 바라보던 눈빛 그때 그 모습을 되살릴 수 없이 멀어져가고 잊혀 가기에 허전하기만 하다 서로가 그리워한들 되돌릴 수 없는 태양의 수레바퀴는 모르는 척 앞만 보고 멈추지 않는 물레방아처럼 돌고 또 돌아가기만 한다 삶의 군더더기들을 망각한 채 오직 사랑의 꽃밭을 차지하려 숨가쁜 경쟁의 시간이었고 두 개의 그림자가 한 그림자 되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달려가야 했던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던 사랑이 그립고 그립기만 하다 2010. 11. 30.
우울한 날이 오기 전에 오늘같이 갈색 잎이 떨어지는 날엔 세상이 우울한 빛으로 물들어간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면 세월의 수레바퀴만 덜커덩거리고 기대하던 마음, 간절하던 마음이 모두 회색빛 우울한 빛깔로 남는다 무언들 생각하지 못할까마는 감히 들어내기 싫어하다가 애써서 감춰 놓은 아예 잊어버린 듯한 게으름... 투명한 어항 속 금붕어를 바라보듯 싫어도 깊이 파고들어 진실을 찾아 이별의 그림자 드리워지기 전에 아름다운 동행의 그림자 쓰다듬어 씁쓸한 그날이 오기 전 옷깃을 여미는 걸음걸이로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바라보며 무관심의 탈을 벗어버렸으면 2010. 11. 25.
산정의 아침 내 입술이 슬그머니 열리면서 미소 짓게 하는 하늘 아래 꿈길을 간다 가을 하늘 바라보며 빽빽하게 서 있는 헐벗은 나무들이 맨발로 서서 손뼉을 친다 봄 여름 힘들게 키운 파란 자식들을 바싹 말려 지표면으로 털어내 이 사람 저 사람의 발바닥에 짓밟혀가며 수북이 쌓이는데도 서럽기는커녕 할 일을 다 한 양 묵묵히 서 있다 하늘과 맞닿은 하늘 금 향해 가파른 계단이 촘촘히 깔렸고 바람길 타고 넘어간 여름 태풍이 아름드리 소나무를 무참히 넘어트려 토막토막 가련하게 잘리어 쌓여 있다 세상 길과는 달리 눈에 거슬리는 것도 귀에 거슬리는 것도 없는 적막한 길 사람 아닌 사람들이 마실 것만 같은 맑은 샘물 하나 졸졸거리는데 빨간 모자를 쓴 옛 동지 하나 손 내밀어 끈끈한 정이 묻은 악수를 청한다 산비탈이 좋아 오르는 사람.. 2010. 11. 23.